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키신저-저우언라이 회담 (문단 편집) ==== 2차 회담 ==== 7월 10일 아침, 키신저에게 닉슨 대통령의 캔자스 시티 연설문 원본이 전달되었다. 원본에는 저우언라이가 직접 체크한 주석이 빼곡하게 달려 있었는데 일흔이 넘은 저우언라이의 정력적인 모습을 확인한 키신저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키신저는 이날 자금성 관광을 하며 ~~[[홍위병]]이 때려부수지 않은~~[* 참고로 이때는 [[문화대혁명]]이 한창일때다.] 중국의 문물을 관람했고 오후 4시부터 저우언라이와 2차 회담에 들어갔다. 2차 회담은 저우언라이의 집무실에서 거행되었으며 역시 8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파일:키신저저우언라이.jpg]]|| || 키신저에게 손수 오리고기를 전병에 감싸 대접하는 저우언라이 || 저우언라이는 전날과 다르게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세계 정세와 혁명 투쟁, 초강대국과의 충돌에 대한 중국 인민의 자세에 대해 키신저에게 강경한 자세로 강의했다. 키신저는 전날과 다르게 장광설을 늘어놓은 저우언라이를 보고 놀랐다. 키신저는 저우언라이의 '미사 여구 없는 발언'에 대해 반박을 시도했으나 저우언라이는 할말을 마친 후에는 관련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끊은 듯이 행동했다. 이 때문에 회담 분위기는 다소 딱딱해졌으나 저우언라이는 키신저에게 식사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며 [[북경 오리 구이]]를 대접했다. 저우언라이는 키신저에게 오리 구이의 먹는 법과 역사를 설명하며 손수 전병에 오리구이를 싸서 키신저에게 대접했다. 식사 이후 분위기는 다시 누그러졌다. 식사 후 재개된 회담에서는 닉슨 대통령의 방중 사실을 발표하는 양국 공동 발표문 초안과 관련해서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중국은 미국에서 먼저 초청을 요청했다는 내용으로 작성하길 원했기 때문에 닉슨이 먼저 중국을 방문하고 싶어 했다는 내용을 추가하자고 주장했다. 양측은 크게 3가지 사항에 대 합의했다. * 1.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인만큼 그 장래가 중국인 사이에 해결되어야 한다. * 2. 베트남 전쟁도 휴전을 통하여 결국 베트남인끼리 정치적 해결이 불가피하다. * 3. 모든 아시아의 분쟁은 평화적인 해결이 당면 원칙이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저우언라이가 정식으로 닉슨의 중국 방문을 초청했고, 키신저는 닉슨을 대신하여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이때 키신저는 방문 시기가 1972년 5월 이전이 되면 좋다는 뜻을 전달했다. 오후 10시에 회담이 끝났고 저우언라이는 다시 마오쩌둥에게 회담 내용에 대해 보고했다. 마오쩌둥은 보고를 듣고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공동 성명에서는 닉슨의 중국 방문을 누군가가 주도한 것으로는 하지 말게나. 쌍방이 함께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야. 내가 닉슨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점도 언급하지 말게." 이에 따라 저우언라이는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고 싶어했다는 문구를 파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